보도자료

[성명서] 동물병원 진료비 개별 공개 시행규칙과 진료부 공개 수의사법 개정안에 대한 대한수의사회의 입장

작성자 대한수의사회 이메일 kvma86@kvma.or.kr 등록일 2026-08-31 조회수 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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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병원 진료비 개별 공개 시행규칙과

진료부 공개 「수의사법」 개정안에 대한 대한수의사회의 입장

- 공적 책임은 외면한 채 규제만 앞세우는 정부와 국회에 요구한다 -

절차를 건너뛴 규제는 정책이 아니다!

 

 

 지금 대한민국 동물의료를 둘러싸고 두 개의 사안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하나는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 8월 6일 입법예고한 「수의사법 시행규칙」 개정안이다. 그동안 지역별 평균 등 통계값의 형태로 제공되어 온 동물병원 진료비용 정보를, 개별 동물병원별 진료비로 확대하여 공개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다른 하나는 지난 8월 25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위원회 대안으로 의결된 「수의사법」 개정안이다. 동물의 진료기록을 보호자에게 열람·발급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대한수의사회는 정보 공개 자체를 거부한 적이 없다. 공익에 부합한다는 취지에 동의하여 진료 항목 표준화 사업에 협력해 왔고, 제도 개선을 위한 협의에도 성실히 응해 왔다. 그러나 동물의료의 근본을 바꾸는 결정을, 그 결정을 매일 현장에서 감당해야 할 당사자와 협의하지 않은 채 밀어붙이는 방식에는 동의할 수 없다. 이에 대한민국 수의사들의 뜻을 모아 다음과 같이 입장을 밝힌다.

 

Ⅰ. 우리가 지키려는 것은 우리의 이익이 아니다

 먼저 분명히 해 둔다. 우리는 진료비가 공개되는 것이 두려워 이 자리에 선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동물의료는 지금까지 사실상 민간의 힘으로 유지되어 왔다. 동물병원의 시설과 장비, 인력과 운영에 드는 비용은 대부분 민간이 감당해 왔고, 국가의 직접적인 재정 지원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런 조건에서도 수의사들은 동물의 건강과 복지 증진, 가축전염병 방역과 인수공통감염병 대응, 안전한 축산물 생산이라는 공익적 역할을 묵묵히 수행해 왔다.

 우리가 반대하는 것은 정보의 공개가 아니라 검증되지 않은 정보의 공개다.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규제의 면제가 아니라 규제를 만들 때 지켜야 할 절차의 준수다. 이 성명은 수의사의 수입을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동물의 안전과 국민의 건강, 그리고 이 나라의 방역 기반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Ⅱ. 절차적 정당성이 결여되었다

 첫째, 시행규칙 개정안은 이해당사자를 배제한 채 예고되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개정안의 직접 이해당사자인 대한수의사회에 대하여 사전 의견조회를 거치지 않았다. 관계기관 및 관련 단체에 대한 사전 의견조회는 입법예고에 앞서 확립된 행정 관행이다. 이를 생략한 예고는 형식만 남은 절차이며, 국민의 일원인 수 만의 수의사에게 의견을 낼 기회를 실질적으로 보장하지 않은 소극행정이다.

 둘째, 규제영향분석서가 첨부되지 않았다.

 입법예고 게시물에는 규제영향분석서가 「미첨부」로 표시되어 있다. 개별 동물병원에 공개 의무와 그 위반에 따른 제재를 부과하는 이 개정안은 명백한 규제의 신설이자 강화이다. 「행정규제기본법」은 규제를 신설하거나 강화할 때 규제영향분석과 자체심사를 거치도록 규정하고 있다. 부담이 크지 않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라면, 그 판단의 근거인 분석서를 공개하면 될 일이다. 분석서가 없다는 사실 자체가 이 개정안이 어떤 검증도 거치지 않았음을 말해 준다.

 셋째, 사전협의의 실체가 공개되지 않았다.

 정부는 국무조정실과의 사전협의를 근거로 규제영향분석서의 첨부를 생략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언제, 어떤 안건으로, 어떤 결론에 이른 협의였는지는 어디에도 공개되어 있지 않다. 검증할 수 없는 협의는 절차의 이행으로 인정될 수 없다.

 넷째, 국회의 진료부 공개 법안은 선결과제를 남겨 둔 채 소위를 통과했다.

 진료기록 공개의 전제가 되어야 할 자가진료 문제와 동물용의약품 유통·처방체계 문제는 수년째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이 두 사안은 제20대·제21대 국회에서 이미 쟁점으로 확인된 문제다. 전제를 그대로 둔 채 결과만 앞세우는 입법은 제도의 개선이 아니라 현장의 붕괴를 부른다.

 「행정절차법」과 「행정규제기본법」이 요구하는 것은 결론의 타당성 이전에 과정의 정당성이다. 내용이 옳다는 확신이 절차를 건너뛸 근거가 될 수는 없다.

 

Ⅲ. 동물의 안전과 공중보건이 위협받는다

 첫째, 공개될 가격은 소비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조건부 가격이다.

 동물 진료비는 체중과 건강 상태, 마취 여부, 병용 처치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이를 병원별 단일 금액으로 게시하도록 강제하면 보호자는 정확한 정보가 아니라 오인하기 쉬운 정보를 받게 된다. 알권리의 보장이 아니라 알권리의 왜곡이다.

 둘째, 공개 항목은 미끼가격으로 전락하고 총 진료비는 오히려 오른다.

 공개된 항목에서만 가격 경쟁이 벌어지면 그 손실은 공개되지 않는 진료로 전가된다. 그 결과 보호자가 실제로 부담하는 총액은 줄지 않거나 오히려 늘어나고, 보호자와 수의사 사이의 불신만 깊어진다. 정책이 내세운 목적 자체를 달성하지 못하는 결과다.

 셋째, 진료기록의 무분별한 공개는 자가진료와 약물 오남용으로 직결된다.

 현재 수의사의 처방을 거쳐야 하는 동물용의약품은 전체의 약 20퍼센트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처방전 없이 약국에서 구입할 수 있다. 진단명과 처방 내역이 그대로 공개되는 순간, 다음 진료는 동물병원이 아니라 약국에서 이루어진다. 항생제 오남용과 약화사고의 위험은 고스란히 동물과 보호자에게 돌아간다.

 넷째, 농장동물에서 그 위험은 국민의 밥상으로 이어진다.

 소·돼지·가금 등 농장동물은 현행법상 자가진료가 전면 허용되어 있다. 여기에 진료기록까지 공개되면 무자격 투약이 관행이 되고, 그 결과는 축산물 잔류물질과 항생제 내성 문제로 나타난다. 이것은 수의사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 건강의 문제이며, 한번 무너진 항생제 관리 체계는 되돌리기 어렵다.

 

Ⅳ. 국가는 스스로 져야 할 공적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

 정부와 국회는 동물복지와 동물의료의 공공성을 강조하며 수의사에게 더 많은 책임과 의무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그 공공성을 유지하기 위해 국가가 부담해야 할 책임은 외면하고 있다.

 공적 책임은 거창한 것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반려동물 정책의 가장 기본적인 기반인 동물등록조차 제대로 관리·정착시키지 못한 채, 현장에는 더 많은 의무와 책임만 요구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모습이다. 국민의 동물진료비 부담을 사회적 문제로 제기하려면 국가도 그 해결에 책임 있게 나서야 한다. 공적 동물의료보험제도의 도입 등 비용과 책임을 국가와 사회가 함께 분담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고, 동물의료의 공공성에 걸맞은 실질적인 재정 지원과 제도적 기반을 갖추어야 한다.

 동물의료의 문제는 수의사를 더 규제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동물이 전문가의 진료와 처방을 통해 안전하게 치료받을 수 있는 정상적인 동물의료체계를 확립하는 것이 먼저다. 공공성을 요구한다면, 공적 책임부터 다하라.

 

Ⅴ. 진료 인프라의 붕괴는 곧 국민의 피해로 확산된다

 이 제도가 지금의 형태로 강행되면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은 1인 동물병원이다. 예방접종과 기초 진료가 수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소규모 병원은 게시 가격 경쟁을 견딜 수 없다. 농장동물 진료 현장은 더욱 취약하다. 이미 수도권 외 지역에서는 농장동물을 진료할 수의사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며, 이들이 현장을 떠나면 그 자리를 대신할 인력은 없다.

 농장동물 임상 수의사는 구제역과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를 비롯한 가축전염병 대응의 최일선을 지켜 온 인력이다. 지역의 진료 인프라가 무너진다는 것은 곧 국가 방역망의 한 축이 사라진다는 뜻이다. 그 부담은 결국 축산농가와 국민이 지게 된다.

우리는 회원의 생계를 이유로 제도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회원이 무너진 자리에 남는 것이 국민의 피해라는 점을 말하는 것이다.

 

Ⅵ. 우리의 요구

하나. 농림축산식품부는 「수의사법 시행규칙」 개정안의 입법예고를 즉시 철회하라.

하나. 농림축산식품부는 이 개정안에 대한 규제영향분석서를 작성하여 공개하라.

하나. 농림축산식품부는 규제영향분석서 첨부 생략의 근거로 제시한 국무조정실 사전협의의 일자, 안건, 협의 결과를 공개하라.

하나. 공개 항목의 범위, 공개 방식, 단계적 적용 계획을 이해당사자와 사전에 합의하라.

하나. 국회는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한 「수의사법」 대안을 전체회의와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신중히 재논의하라. 자가진료의 전면 금지와 「약사법」상 약사예외조항의 정비를 선행 과제로 함께 처리하라.

하나. 정부와 국회는 공적 동물의료보험제도 등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동물의료의 비용과 책임을 분담할 수 있는 실질적인 공적 지원체계를 마련하라.

하나. 정부와 국회는 전문가의 목소리를 배제한 일방적 정책 추진을 중단하고, 대한수의사회와 상설적인 협의체계를 구축하라.

 

Ⅶ. 우리는 법이 정한 방식으로, 국민의 이름으로 저항한다

 대한수의사회는 모든 회원과 함께 「민원 처리에 관한 법률」 제24조에 따른 다수인관련민원을 농림축산식품부에 제출한다. 아울러 규제영향분석서 미첨부와 국무조정실 사전협의 내용 미공개에 관하여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에 따른 정보공개를 청구한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스스로 제정한 「농림축산식품부 민원처리규정」에서 다수인관련민원의 해소 및 방지대책을 민원조정위원회의 심의·조정 사항으로 정하고, 그 처리상황을 감사관이 연 1회 이상 점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우리가 제출할 민원은 정부가 스스로 만들어 둔 그 절차 위에서 답변 되어야 한다.

 우리는 당당하게 진료실을 비우고, 법과 규정과 절차에 따라 저항한다. 

 연명부에 적히는 이름 하나하나는 동물의 안전과 국민의 건강, 그리고 국가가 지켜야 할 절차를 지키기 위해, 잘못된 절차로 만들어지는 규제에 대하여 국민 한 사람이 자신의 이름으로 남기는 의사임을 알고 무겁게 받아들이라.

 우리는 국민의 알권리를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확한 정보만이 알권리를 충족시킨다고 믿는다. 그러나 검증되지 않은 가격과 맥락이 제거된 진료기록은 정보가 아니라 혼란이다.

 수의사가 무너지면 동물의료가 무너지고, 그 피해는 결국 동물과 보호자, 축산농가와 국민 모두에게 돌아간다. 오늘 우리가 목소리를 내는 이유는 오직 여기에 있다.

 우리는 아픈 동물의 곁을 지켜 온 사람들이다.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이제 진료실 밖에서도 말한다. 이것은 이익을 지키려는 다툼이 아니라 직업적 책임의 연장이며, 부끄러움이 아니라 자긍심으로 하는 일이다.

 정부와 국회에 요구한다. 지금이라도 절차를 다시 밟으라. 대한수의사회는 그 자리에 협력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이 요구마저 끝내 외면된다면, 대한민국의 수의사들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법이 정한 모든 절차적 수단을 다하여, 동물의료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함께 설 것이다.

 

2026년 8월 31일

 

대 한 수 의 사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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